2025
3-8.
스미스 일병은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죄악이 십계명 이후에 발명되었다는 사실은 배우지 못했다. 분대 내 괴롭힘은 벌써 몇 주째 지속되고 있었지만, 면담 일정은 차일피일 지연되고 있었다. 지난달 영관급 장교의 군수 비리가 발각되며, 여단 내 지휘 체계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이유였다. 욕설과 위협, 따돌림으로 시작된 가혹 행위는 성적 학대와 집단 폭행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 갔다. 다른 모욕은 모두 견딜 수 있었지만, 보급품 은닉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책임 물자를 반복적으로 분실하는 병사에게 통합미군형법은 휴가 제한은 물론 보직 변경과 같은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파병 지역에서의 작전 수행 장애는 불명예 제대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빈털터리로 루이지애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해자 한 명과 경계 근무를 서고 돌아가는 길에, 스미스 일병은 충동적으로 총기를 들었다. 그러나 총구는 가해자의 머리가 아니라 감시탑 아래 차가운 그늘 속에서 용액이나 얼룩처럼 천천히 움찔거리는 형체를 향해 겨누어졌다. 병사들이 다가오자 남자는 대뜸 상자를 내밀었는데, 담배며 식량, 위생용품까지 군매점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미제 물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심문부터 연행까지 훈련받은 내용대로 처리해야 옳았지만, 일병은 규범과 절차를 따르는 대신 자기 자신만의 계율을 만들어 냈다. 상자를 발로 밀어 가해자 상병 쪽으로 옮겨 준 것이다. 일행이 게걸스럽게 내용물을 확인하는 사이 스미스 일병은 남자에게 출입구 근처 철조망을 가리켜 보였다. 말은 필요 없었다. 경계 소대가 이른바 유령과 첫 거래를 트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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