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2.

노인은 목수다. 전쟁으로 집과 일터,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가장 뼈아픈 손실은 다름 아닌 외아들을 빼앗긴 것이다. 징집되어 끌려간 살붙이는 정전 협상이 체결된 지 5년이 지나도록 연락 한 번이 없다. 한편, 노인과 형편이 거꾸로 뒤집힌 남자 하나가 목공소를 찾아온다. 평안도 출신인 이 젊은이는 집이며 토지 따위의 온갖 자산은 물론 양친의 목숨마저 강탈당해 털레털레 남쪽으로 내려왔다. 외아들이 전선에서 살아남았다면 아마 이 남자와 함께 목공 일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노인은 목공소의 창고에서 젊은이를 재우고 먹이며, 만들고 짓는 기술을 가르친다. 두 사내는 서울 변두리와 경기 중남부의 농촌들을 돌아다니면서 폭격으로 주저앉은 헛간이나 제방을 보수하고, 낡은 농기구들을 새것으로 교체해 주며 작은 삯을 받는다. 남자가 말없이 목공소를 떠난 것은 3개월 뒤다. 노인은 글루텐 분말이 벗겨진 담배 종이 위로 삐뚤빼뚤하게 흘려 쓴 문장을 읽고 조용히 목공소 문을 닫는다. 노인장, 난 이렇게는 못 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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