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8.

백귀白鬼로 불린다고 다 같은 귀신들일 수는 없다. 청년회원 모두가 기독교도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주 집안과는 일절 관련 없는 자들도 많았고, 나중에는 평안도 땅 한 번 밟아 본 적 없는 사내들마저 기동대 완장을 받았다. 심지어는 이북에서 재판을 피해 달아나 쫓겨나다시피 내려온 범죄자들도 마구 섞여 들어와서, 조직은 반공 재야 단체라기보다 사설 군사 기관에 가까운 노선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정남은 합숙소에서 바로 옆 침대를 썼던 어느 사내와의 대화를 곱씹어 본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중얼거리는 목소리만은 오랫동안 귓가에 남아 있다. 정남이 서울역 안내소와 중앙본부를 거쳐 마침내 종로지부 기동대로 배치받았을 때, 사내는 이미 기동대장 밑에서 체포조를 움직이는 반장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반장은 말수가 적었고,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만 했다. 정남은 반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빨갱이인지 아닌지 무슨 수로 가려낸답니까? 반장은 정남에게 담뱃불을 빌려 가더니 조용히 일러 주었다. 살고 싶어하는 놈들은 다 빨갱이야. 지금 정남은 과거의 정남과 똑같은 질문으로 괴로워 하는 기동대원 앞에 서 있다. 입 속의 연기. 석회가루 같은 타르 찌꺼기 속에 어떤 말들이 부풀어 오르지만, 혀뿌리로 묶이지는 않는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한 채 밤만 깊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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