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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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하는 물건만 바뀌었을 뿐이다. 정평에서 노인은 닳아서 못 쓰게 된 직물들을 수거하던 넝마장수였다. 인근 마을들을 왕래하며 주워 모은 헌옷들과 자투리 천들로 여덟 식구 살림을 간신히 꿰매고 누볐다. 침선 기술이 좋은 아내의 손을 빌려 새로 바느질된 조각보들은 머릿수건, 강보, 옷가지의 형태로 쏠쏠한 값에 팔려 나갔다. 노동당에 재산을 몰수당하는 사람이 늘면서, 가계 수입을 의존해 온 재활용 유통망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노인은 피난 행렬을 따라 이동하며 헐값에 세간살이를 사들일 생각으로 집을 떠났고, 그게 마지막이다. 고향에는 아직 일곱 식구가 남아 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끊임없이 떠밀려 내려오는 피난민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정평 소식을 물었다. 이제 고향 소식은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 이북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은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를 받는다. 언행에서 고향 냄새를 씻어내야 한다. 살다 보면,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2025. santanchoi@gmail.com ⓒ2025 by Lijung & Jeongwon Shin. Project by Lijung, Text by Jeongwon Shin